“인쇄소, 봉제공방.. 냄새도, 소음도, 공기마저 낯설다. 서울 한복판에 붙어있는 골목이라 낯설지만 따뜻하다. 찾아가는 발걸음에 정성이 더해지고 이내 여유가 묻는다. 정원을 품에 안고 디귿(ㄷ) 자로 누워있는 건물마저 소담스럽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리땁게 줄지어 진열된 수천가지 제품들이 손님들을 맞이한다. 씻고 바르고 놀다 보면 하루도 모자랄 듯한 위용이다. 이 다양한 제품들이 주인공인 듯 싶었지만 이 공간의 주인은 따로 있었다. 이곳은 아름다워지는 공간이다. 피부결과 피부톤에 맞는 화장품들로 얼굴을 두드리고 있다 보면 피부는 혈색을 되찾고, 가만히 앉아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다 보면 제주의 푸른 잎사귀들에 마음은 온기를 되찾는다. 이 오래된 건물은 오묘한 뼈대를 가지고 있다. 걸음을 조금 움직여보면 작은 공간 안에 여러 개의 시선이 숨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시선만 바뀌었을 뿐인데 뭔가 세상이 달라 보인다. 그리고, 그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연한 발견 속에서 찰라의 기쁨과 마주하는 나를 만나게 된다. 이 공간의 주인공은 바로 나였다.”

 

한 브랜드 매장을 찾은 어떤 고객의 경험이다. 바로 필자의 경험이다. 필자가 방문한 이 곳은 우리의 오랜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성수’이다. 아모레성수는 성수동의 오랜 건물들 속에 조용히 자리잡은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플래그십 스토어이다.

 

아모레성수가 세워지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입지 선정부터 남달랐으니까. 아모레성수가 성수의 핫 스팟이 아닌 외지고 낯선 공방들 사이에 자리를 잡기까지, 브랜드와 고객에 대해 남다른 철학을 가진 마케터와 디자이너들이 없었다면 이루기 어려운 일이었다. 기업의 의사결정, 특히 대기업의 의사결정은 보통 성과에 대한 보장을 담보해야 움직임이 가능하다. 대표 하나에 임직원 몇 명이 꾸리는 소규모 기업이 아니다 보니, 성과는 다각적으로 평가받기 마련이고 기업 활동의 모든 부분은 재무적 수치로 다뤄지게 되어있다. 고객의 트래픽이 전무했던 이곳에 아모레성수를 세울 수 있었던 그들의 소신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브랜드가 가야할 길이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케터들은 브랜드의 혼을 담은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이를 정기적으로 리뉴얼 해왔다. 그리고 그들의 브랜딩 작업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광고했다. 브랜드 로고, 브랜드 컬러, 브랜드 심볼, 패키지와 캐릭터, 그리고 광고 모델과 분위기 등 다양한 브랜드 요소들이 이를 도왔다. 마케터의 바램은 우리가 세운 브랜드의 정수(essence)가 소비자의 머릿 속에, 그리고 가슴 속에 남길 바라는 것이었다. 심리학적 메커니즘에서는 연합 학습(associative learning)으로 브랜딩 과정을 설명한다. 주입식 교육이다. 이런 방식이 지금도 통하겠는가?

 

마케팅의 영역에도 디지털이 물밀듯이 들어오고 성과에 대한 민감도는 날이 갈수록 높아졌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브랜드’라는 단어는 올드하게 느껴지는 키워드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데이터’가 들어오고 ‘퍼포먼스’가 마케팅의 발전을 견인했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이 바통을 이어받아 매출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찾기 위해 시장을 쪼개고 고객의 일상을 침투하려는 고도화를 시도하는 중이다. 마케팅과 과학이 접목된 영역에서 새로운 솔루션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아직 고객의 불편 해소를 넘어 감동을 주는 수준까지 가기는 멀어 보인다. 고객의 피로를 가중하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필자가 본 이 브랜드는 과거의 법칙에 기대지도 않았고 트렌드에 편승하지도 않았다. 전례 없는 기획과 시도를 이루어 내기 위해 디자이너로서, 마케터로서 스스로를 믿고 다 같이 그 길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길을 내었다. 그 길에서 본 것은 뉴노멀이 찾아 해매던 마케팅의 본질이다.

 

기업이 목표로 해야 하는 성과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매출 성과이고 다른 하나는 시장 성과이다. 마케팅과 영업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영업이 목표해야 할 것은 매출 성과이고, 마케팅이 목표해야 할 것은 시장 성과이다. 여기서 마케팅이 목표로 하는 시장 성과를 살펴보자. 기업의 궁극적인 목표가 수익 창출이다 보니 적지 않은 마케팅 팀에서 영업 팀이 해야 할 목표를 자신들의 것인 양 착각하는 우를 범한다. 마케팅을 고도화 하기도 전에 바로 매출에 집중해 버리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고객을 푸시해서 판매로 유도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고객이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케팅 팀은 시장 성과를 만드는데 집중해야 한다. 눈에 보이는 매출 이면에 눈에 보이지 않은 잠재적이고 미래적인 매출을 만들어내는 팀이 바로 마케팅 팀이다.

 

요즘같이 정보 탐색에 민감하고, 정보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며, 정보를 직접 만들어내는데도 능한 스마트한 소비자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는, 마케터는 화법을 바꾸어야 한다. 그리고 화법을 바꾸기 위해 먼저 관점부터 바꾸어야 한다. 기업의 시장 성과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 그 성과를 만들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 그리고 시장의 원천인 소비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그런 시점에서 아모레성수는 마케팅의 지향점을 보여준다. 더군다나 코로나19로 인해 온라인의 가속화가 심해지는 이때 오프라인 매장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그들 만의 길을 만들고 또 제시하고 있다.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다.

 

아모레성수는 월 평균 약 1만명 고객이 방문할 만큼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성수동 명소로 자리잡은 곳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기사들도 무수히 성공 사례로 소개된 바 있다. 필자는 이 지면을 빌어 현장에서 아모레성수를 기획했던 2명의 크리에이터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이 전해준 울림을 3가지 레슨 포인트로 전하려고 한다.

 

1. 고객 감동을 위한 섬세한 배려

장인을 알아보는 길은 ‘디테일’에 있다. 전문가를 알아보는 길도 역시 ‘디테일’에서 나온다. 디테일을 보면 업(業)을 다루는 마음이 보인다. 아모레성수를 기획한 팀은 디자인에 특화된 부서이다. 디자이너들은 사물을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 이들은 공간을 재창조하는 뛰어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디테일에는 항상 소비자가 함께 했다. “이곳은 예전에 있던 오래된 건물이 주는 자연스러움을 그대로 담고 있어요. 그래서 위치에 따라 눈높이가 달라져요. 높이에 따라, 방향에 따라, 시간에 따라 같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되는 거죠. 일상을 새롭게 발견하는 재미를 느낀다고 할까요.” 이들은 아모레퍼시픽의 브랜드들을 경험시키는 공간을 설계하는데 항상 ‘고객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 앉아서 화장을 즐기고 여유를 즐기는 고객들을 상상하며 공간 경험의 디테일들을 완성해갔다. 이 곳을 나가는 순간에 거쳐가는 ‘성수꽃집’은 아모레성수의 경험들을 아름답게 매듭지어 주기에 충분했다. 들어오는 처음부터 나가는 끝까지 고객이 받은 것은 선물 같은 경험들이다.

 

2. 자신의 길에 집중하는 진정성

과거에는 수단이 참 유용했다. 그래서 마케팅의 수단으로 광고와 홍보가 주요한 도구로 쓰였다. 제품과 서비스가 가진 장점과 혜택을 찾고 또 찾아서 열심히 어필했다. 멋있게 보이기 위한 방법들을 고안했고, 쇼를 올리듯 이벤트로 풀어 내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제품과 브랜드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제품과 브랜드의 매력이 돋보여야 한다. 하지만 아모레성수는 달랐다. “내가 가진 장점을 알리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준비가 되어 있으면 굳이 애쓰지 않아도 고객들이 알아봐 준다고 생각해요.” 소극적이고 조심스러운 접근이라고 느낄지 모르겠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자기에 대한 믿음이 있고 진정성이 담긴 접근이다. 그렇게 아모레성수는 물을 길어 담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기어이 넘쳐 흘렀다. 지금 같은 네트워크 시대에는 물을 가득 붓기만 해도 알아서 길을 내면서 흐르게 되어 있다. ‘자신에 집중하는 진정성’이 통한다는 것을 아모레성수는 몸으로 증명하고 있다.

 

3. 소비자를 위해 준비한 브랜드라는 작품

경험에도 깊이가 있을까? 가장 쉬운 경험은 머리로 하는 간접 경험이다. 다음은 시간과 돈을 들여 몸으로 체험하는 직접 경험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깊숙한 곳에 놓인 것은 마음의 경험이다. 경험의 시대에 마케터들은 다양한 경험들을 기획하고 설계한다. 어떻게 하면 깊이있는 경험을 남길 수 있을까? “이곳에는 숨겨진 공간이 많이 있어요. 탐색하듯이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공간들요. 우연히 얻은 행운처럼요. 우리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고객이 그것을 용케 알아봐 주는 것 같아요. 참 신기하죠. 그 만큼 고객의 경험은 적극적인 것 같아요. 그들이 사진으로 찍고 기록으로 남기려다 보니 스스로 발견하고 그걸 주변에 알려주는 거예요.” 설득하지 않고서도 인정받는 방법. 고객이 기꺼이 설득되는 경험. 그것을 아모레성수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과하지 않게 여백을 남겨 그곳에 고객을 채워넣었다. 경험의 깊이를 완성하는 것은 소비자였다. 마치 미술작품이 그것을 감상하는 관람객에 의해 해석되면서 완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 다 하려고 하지 마라. 고객을 위한 공간을 남겨두어라. 고객의 마음에 여운을 남겨라. 그러면 매출은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것이 진정한 마케팅의 본질이다. 아모레성수는 정녕 고객으로 인해 완성되는 공간이었다.

 

길지 않은 현장 방문에서 필자가 받은 감흥은 남달랐다. 젊은 두 리더가 몸으로 만들어가는 길은 참으로 멋있어 보였다. 답도 없고 참고서도 없다. 그저 소비자를 믿고 바라보며 자신의 길을 소신있게 만들어 갈 뿐이다. 이것이 진정성이다. 진정스러운 마음은 경이와 감사를 동반한다. 비록 짧았지만 그들과 따뜻한 차를 마시며 함께 했던 시간들은 마치 아모레성수가 그러했듯 내게 행운같은 순간들을 선물해 주었다. 먼 길로 돌아가는 것 같지만 가장 빠르고 단단하게 리더의 길을 보여준 아모레성수였다.

아모레성수 매장 사진 (출처: 아모레퍼시픽)
아모레성수 매장 사진 (출처: 아모레퍼시픽)

 

*본 기고는 2021년 3월 12일 현장 방문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마케팅의 본질에 대해 깊은 통찰을 주신 한국마케팅협회 김길환 이사장님께 심심한 감사를 드리며, 한국 뷰티의 저력을 보여주신 허정원 상무님과 백인우 팀장님께 존경과 응원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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